※비속어 표현 주의※                                                                                                                                                                                                                            
 ※자살 언급 주의※ 
 ※귀신 소재 주의※ 
                                                                                                                                                                                                                                    


            그 동네에 대해서 사람들은 말한다. 어딘가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곳이라고, 봄마다 입구부터 화려하게 피어있는 보라색 등나무들이 정말 아름다운 곳이라고,            
                                          등나무의 꽃말이 환영이라는 뜻이라며 그 동네에 들어가면 환영을 받는 느낌이라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현제유진] 등나무 동네                                                                                                      
                                                                                                                 w. 서아린        
   
            
                                                                                         



 한유진은 날 때부터 타고난 영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의 기를 느낄 뿐만 아니라 퇴마도 가능할 정도의 영력, 하지만 한유진은 기술이 부족했다. 아무리 능력이 타고났다 한들 기술이 부족하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한유진의 부모님은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위험한 일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는 퇴마에 발을 들이는 것보다 그냥 평범한 일반인들처럼 살아가는 게 한유진에겐 훨씬 더 좋은 삶일 테니까.

 그리고 한유진이 5살이 되던 해 한유현이 태어났다.

 다행인지 아닌지 한유현은 제 형과는 달리 영력이 적었다. 영력이 적을 뿐이지 그것의 기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한유현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은 존재로 여겨졌다. 강하게 느껴지는 화의 기운과 더불어 보이는 영력이 적을 뿐 잠재적인 영력이 존재하며 그것이 언제 드러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였다. 덕분에 한유현은 가문 사람들과 부모님께 많은 사랑을 받지 못했다. 그 가문에서 한유현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한유현의 형, 한유진뿐이었다. 한유현 역시 자신의 형인 한유진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형제들은 행복했다. 그것은 5살인 형과 1살인 동생만의,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행복이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5년 뒤, 형제의 부모님이 사고로 인해 세상을 떠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은 여행을 간다며 아침 일찍 집을 나섰고 한유진은 집에서 한유현과 단둘이 놀고 있었다. 삑삑삑삑-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급하게 거실로 들어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한유진은 부모님이 돌아온 건가 싶어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그곳에 보이는 건 놀란 표정으로 한유진과 한유현을 쳐다보는 삼촌이 있었다.

 “유진아..유현아..”
 “삼촌?”
 “너희..삼촌이랑 병원에 가야할거 같아, 지금 엄마랑 아빠가 많이 다치셔서 병원에 있데...”

 형제의 삼촌은 애써 웃음을 지으며 유진이에게 옷을 갈아입으라고 말했다. 검은색 옷으로, 한유진은 삼촌의 말에서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병원에 가는데 굳이 검은색 옷을 입어야 하는 건가? 한유진은 옷방으로 가 서랍에서 유현이의 옷을 꺼낸 뒤에 저 먼저 옷을 갈아입고 유현이의 옷을 들고 거실로 갔다.

 “형아?”
 “유현아, 옷 갈아입자”
 “응”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삼촌을 앞에 두고 한유진은 제 동생의 옷을 갈아입혔다. 삼촌, 가요. 준비를 마친 한유진은 한유현의 손을 잡고 현관으로 가 신발을 신고 나가 밖에 주차되어있는 삼촌의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갔다. 어느덧 병원 앞에 도착해 내린 한유진은 옆에 있는 장례식장 입구 앞에서 춤을 추며 웃고 있는 여인을 보았다. 한눈에 봐도 사람이 아닌 듯 보였다. 악귀구나, 한유진은 악귀를 보더라도 모르는 척하라던 엄마의 말이 떠올라 한유현의 손을 잡고 악귀를 지나쳐 갔다. 그 순간 한유진은 들었다. 제 부모님의 이름을, 악귀가 분명 웃으며 부모님의 이름을 끊임없이 반복해 말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한유진은 알았다. 장례식장 입구 앞에서 제 부모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는 건 저 악귀가 부모님에게 해코지를했고, 부모님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걸. 한유진은 화가 난 나머지 자신이 퇴마를 못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씩씩대며 한유현의 손을 놓고 악귀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유진군”

 그때, 누군가 한유진의 앞을 막았다. 한유진은 제 앞을 막은 사람을 올려다보았다. 빛바랜 은발에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상당히 이국적인 남자였다. 남자는 무릎을 접어 한유진과 시선을 맞췄다. 유진군, 병원 입구는 여기가 아니라 저기라네. 남자는 당황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삼촌과 한유현이 있는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 아 맞다! 착각했어요! 순간적으로 튀어나온 변명이었다. 남자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한유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유진아, 솔직하게 대답해야지”

 한유진의 표정이 굳었다.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한유진을 안아 들었다. 저 악귀를 없애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남자는 뒤를 돌아 악귀 쪽을 향해서 한번 손짓을 했다. 그러자 악귀 주변에서 작은 스파크가 일더니 순식간에 큰 전격이 악귀를 감싸 그대로 소멸시켜버렸다. 한유진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사람들은 악귀가 있던 자리에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한유진을 안고 있던 남자는 한유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자, 한유진군의 부모님을 죽인 저 악귀는 이제 사라졌네. 속이 시원한가?”

 남자의 말에 한유진은 마음속의 분노가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동시에 한유진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유진아? 저를 안고 있던 남자는 조금 당황한 듯 보였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보고 한유진 자신도 놀란 듯 소매로 열심히 눈가를 닦았다. 하지만 눈물이 쉽게 그칠 리 없었다. 결국, 한유진은 남자의 품에 안겨 엉엉 소리 내어 울었다. 누가 제 부모의 죽음을 알고 울지 않을 수 있을까. 남자는 한유진이 다 울 때까지 조용히 등만 토닥였다.


                                                                                                                          * * *


 그로부터 5일이 지나 한유진은 화장터 밖에 있는 작은 공터 벤치에 앉아 한유현과 함께 제 부모님의 화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날, 한유진이 짐작한 대로 부모님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다. 사인은 급발진으로 인한 교통사고, 그대로 가드레일을 박고 절벽 아래로 떨어진 것을 뒤에 오던 차가 발견해 신고를했지만 이미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고 구조요원이 말했다며 먼저 병원에 와 있던 큰이모가 말해주었다. 한유진은 피곤해서 잠든 한유현을 제 무릎에 뉘이고는 하늘을 보았다. 날 좋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을 보고 있자니 한유진은 부모님 없이 어떻게 둘이 살아가야 할지 막막했지는 것을 느꼈다. 고작 10살인 아이가 할 걱정은 아닌 듯했지만. 가문의 사람들은 한유진은 몰라도 한유현 때문이라도 형제를 거두는 걸 원치 않았다. 대놓고 거부한 건 아니었지만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도 한유현을 두려움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았으니까. 유진군, 그새 수심이 깊어진 한유진의 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때 그 남자. 한유진은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오랜만이지?”

 저와 눈을 마주치자 눈을 곱게 접으며 오는 남자와 남자에게 연신 감사하다고 말하는 삼촌이 보였다. 용, 남자를 보자마자 떠오른 이미지는 용이었다. 왜일까, 지금의 남자에게선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운이 느껴졌다. 이 남자, 평범한 사람이 아니구나. 한유진은 저도 모르게 남자를 경계했다. 어느새 앞으로 다가온 남자는 한유진이 자신을 경계하는 것을 보고 웃음을 터트렸다. 경계하지 않아도 된다네. 남자는 그때처럼 무릎을 접어 한유진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유진아, 그러지말고 유현이 깨워봐 중요한 이야기야”

 옆에서 보고 있던 삼촌은 뭐가 그리 좋은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유진은 뭔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중요한 이야기라고 하니 일단 한유현을 살살 흔들어 깨웠다. 형?.. 잠에서 깬 한유현은 눈을 비비며 일어나 제 앞에 있는 남자와 삼촌을 보고는 잔뜩 경계하며 한유진의 팔을 꼭 잡고 붙었다. 안녕, 꼬마 도련님.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한유현에게 인사를 했지만, 삼촌은 한유현이 경계하자 조금 겁을 먹은 듯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평정심을 되찾으며 입을 열었다.

 “이 분이 너희를 데려가겠다고 하셨어. 저번에도 한번 뵜지? 인사해라, 우리 가문을 수호해 주시는 청룡 성현제님이셔”
 “네?”

 청룡이요? 한유진은 눈앞의 남자를 다시 보았다. 아까보다 강해진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은 명백한 용의 기운이었으며 그에게서 언뜻 용의 꼬리와 뿔이 보이는 듯했다. 청룡은 전(電) 속성을 다룬다고 했던가, 한유진은 그때의 전격을 다시 떠올렸다. 다시 생각해보니 평범함 퇴마사의 힘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우리를? 한유진은 의문이 가득한 얼굴로 성현제를 바라보았다.

 “왜냐고 묻는 얼굴이군, 생각해보게 가문을 수호하는 입장에서 어떻게 부모 잃은 가문의 아이를 내버려두겠나?”

 성현제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형제를 바라보았다. 한유진은 뭔가 납득이 되는 얼굴을 했지만 한유현은 불만스러운 표정이었다. 성현제는 이런, 꼬마 도련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군이라며 한유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덕분에 한유현의 표정을 더욱 험악해졌다. 그래봤자 성현제의 눈에는 5살 아이의 투정으로 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한유진은 조금 난감해하는 삼촌을 보고는 제게 붙어 성현제를 잔뜩 노려보는 한유현을 어르고 달랬다. 그럼에도 한유현은 노려보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성현제는 그런 한유현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한유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럼 앞으로 잘부탁한다네, 한유진군”

 한유진 10세, 한유현 5세, 성현제 ???세, 그렇게 그들의 동거가 시작되었다.


                                                                                                                          * * *


 셋의 동거가 순탄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 제일 큰 문제는 집에 관한 문제였다. 부모님의 장례가 끝나고 난 후 짐을 정리하다 짐 속에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자식들에게 넘기겠다는 말이 적인 유산상속서가 발견되어 한유진과 한유현은 자신의 집에서 살고자 했고 풍수지리가 좋은 곳에 집을 지어놓고 소소하게 자택에서 사업을 하며 살던 성현제는 이런 집보다 자신의 집이 터와 기운이 더 좋다며 자신의 집에서 살고자 했다. 하지만 근 이틀간 진행되었던 집 문제는 며칠 새에 흉흉해진 집과 지나가던 잡귀의 장난인지 악몽 때문에 이틀간 잠을 자지 못한 한유현으로 인해 성현제의 집에서 살기로 한 채 마무리가 되었다. 성현제의 집에서 살 게 된 후 사실 그 집은 죽은 자들이 지나가는 귀로(鬼路)가 통과하는 집이었고 그로 인해 있던 좋지 않은 기운과 들어오는 잡귀들을 막아주던 것이 형제의 부모님이었다는 것을 한유진이 알게 된 건 나중의 일이었다.

 그렇게 7년, 성현제와 살 게 된 지 7년이 지나 한유진은 고등학교에 들어서면서부터 퇴마를 시작했다. 여태까지는 성현제의 도움으로 살아왔지만 17살 정도면 자기 앞가림은 해야 한다며 더 이상 신세를 질 수 없다는 한유진의 강력한 주장 때문에 시작하게 된 거였다. 성현제는 한유진이 타고난 영력을 가졌지만 퇴마 능력은 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진해서 도움을 주겠다고 나섰다. 한유진은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한유진군은 퇴마 능력이 형편없다던데 혼자 퇴마라도 하다가 큰일이라도 나면 도련님은 어쩌려고 그러나? 라는 성현제의 말에 결국 성현제와 함께 퇴마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퇴마를 시작한 한유진은 상당히 많은 후회와 고민은 했다. 그냥 귀신이 있는 곳에 가서 귀신을 뚜까 패면 끝나는 줄 알았지 따로 개설되어있는 사이트에서 의뢰를 찾아 의뢰인과 연락하고 만나서 사정을 듣고 퇴마를 하고 일주일간 의뢰인의 상태를 살펴보고 등등 생각보다 시간을 잡아먹고 귀찮은 일이 많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수입이 짭짤하다는 것, 이런 고된 일에 수입도 없었다면 한유진은 바로 퇴마를 때려치우고 다른 아르바이트를 구했을지도 몰랐다.

 역시 인간은 자본주의의 노예, 한유진은 1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

 한유진이 퇴마를 시작한 지 1년이 지났다. 한유진은 이제 퇴마사의 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능숙하게 퇴마 의뢰를 처리해갔다. 평화로운 토요일 오후, 오늘도 한유진은 컴퓨터 앞에서 성현제가 만들어준 아이스 카페 모카를 마시며 의뢰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괜찮은 의뢰가 보여 곧바로 성현제를 불렀다. 혼자 하는 퇴마가 아닌 성현제와 같이 하는 퇴마였기에 한유진은 의뢰를 받으면 항상 성현제에게도 허락을 구했다.

 “전교 1등 귀신?”
 “몰라요? 전교 1등을 질투한 전교 2등이 전교 1등을 옥상에서 밀어 죽이고 난 뒤에 그 전교 1등이 매일 밤 학교에서 자기를 죽인 전교 2등을 찾으러 다니는 그 괴담이요”
 “나도 안다네”

 오래 사는 만큼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아야 하니 그 정도의 유명한 괴담은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거 아니겠나. 성현제는 놀랍다는 듯이 자신을 쳐다보는 한유진을 보고는 난감한 듯 웃으며 말했다. 뭘 그렇게 보나? 아니, 생각보다 옛날 사람은 아니구나 싶어서요, 의뢰나 마저 확인하지. 성현제는 컴퓨터 화면에 떠 있는 글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ㅎㅇ고등학교 옆에 있는 ㅎㅎㄱㄹ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입니다. 로 시작하는 글은 그다지 길지 않아 빠르게 읽을 수 있었다. 대충 정리하자면 글쓴이는 고등학교 3학년이고 작년부터 학교에서 시험마다 전교 2등을 하는 애가 다치거나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는다며 운 좋게 다치기만 한 전교 2등들은 하나같이 다 2년 전에 자살한 전교 1등을 보았다고 증언했다고 한다. 이번 학기 중간고사에 자신이 전교 2등을 했는데 소문 때문에 무서워서 며칠째 학교를 못 나가고 있다고 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 학교에 있는 전교 1등 귀신을 퇴치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럼 이 의뢰자한테 연락 넣어볼게요”

 한유진은 의뢰인의 글 밑에 있는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 여보세요. 사이트 글 보고 연락 드렸는데요. 의뢰자가 전화를 받자 한유진은 능숙하게 전화를 이어가며 의뢰자와 컨텍 일정을 잡았다. 네, 그럼 거기서 뵙겠습니다. 띡- 전화를 끊은 한유진은 곧바로 나갈 채비를 하였다. 성현제는 한유진이 마셨던 카페모카 컵을 치우고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한유진을 배웅하러 갔다. 현관에는 어느새 한유현도 나와 있었다.

 “형, 의뢰하러 가?”
 “응, 우리 유현이 좋은 거 사주려면 열심히 일해야지. 의뢰인 잠깐 만나고 올테니까 성현제씨랑 같이 있어”
 “그냥 성현제랑 같이 가, 둘이 있는 건 싫어”
 “유현아”
 “알았어...”

 성현제는 뾰로통해진 한유현을 보며 웃다가 키링은 잘 가지고 있겠지? 라며 한유진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한유진은 귀찮다는 듯이 핸드폰 케이스에 달려있는 핫핑크색 공을 들고 있는 작은 청룡 인형이 달린 키링을 보여주었다. 어차피 잃어버리면 알아챌 거면서 왜 자꾸 확인하는 거에요. 그야 유진군이 나와 연결되어있다는 증거니까? 한유진은 성현제의 말에 잠시 벙진 표정으로 성현제를 보다가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갔다.

 “성현제 진짜 짜증나..”

 한유진은 얼굴이 잔뜩 붉어진 채 청룡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웅얼거렸다. 청룡 인형은 성현제가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부르라고 한유진에게 준 일종의 소환 매개체였다. 퇴마는 몰라도 의뢰인을 만나는 가벼운 일에는 되도록 한유현을 집에 혼자 두기 꺼려하는 한유진을 배려해 만들 때 성현제의 영력을 담아놔 한유진의 영력을 조금만 주입하면 성현제와 감각을 공유할 수 있게 해놓기도 해서 청룡 인형은 그의 말대로 둘의 연결고리인 셈이었다. 맞는 말인데 왜 그 인간이 말하면... 한유진은 아직도 진정되지 않는 열을 손부채질로 식히며 의뢰인과 만나기로 한 장소로 향했다.


                                                                                                                          * * *


 “유하나씨 맞으시죠?”
 “네, 그쪽이..”
 “퇴마사 한유진입니다.”

 만나기로 한 장소는 역 근처에 있는 사람 많은 카페였다. 의뢰인 유하나는 카페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안절부절못하며 카페 입구만을 힐끔거리고 있었기에 찾는 건 쉬웠다. 한유진은 일단 음료를 시키고 오겠다며 카운터로 가 카페모카 한 잔, 아이스 초코 한 잔을 시켰다. 학생에게 커피를 내 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5분 정도 기다리니 음료가 나와 한유진은 빨대를 챙겨 자리로 돌아갔다.

 “드세요”
 “감사합니다...”

 
 한유진은 카페모카를 한 모금 들이키고는 주머니에 있는 청룡 인형 키링을 잡아 살짝 영력을 불어넣었다. 온몸에 정전기가 흐르듯 찌릿한 느낌과 함께 귓가에 성현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아이인가?

 한유진은 천천히 의뢰인을 살펴보았다. 자연 갈색의 단정한 칼 단발, 동그란 안경, 전형적인 모범생의 느낌이 물씬 났다. 옆에 둔 책가방과 옷차림을 보아하니 독서실이나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자신의 전화를 받고 나온 듯 보였다.

 “저는 유하나.. 협회국립고등학교에 다니고 있고요..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반가워요, 유하나씨. 제가 만나 뵙자고 한 건 의뢰에 관해 좀 더 자세하게 듣고 퇴마에 대해서 안내를 해드리기 위해서예요”

 
 부담 갖지 마시고 의뢰에 관해서 더 말씀해주실 사항이라던지 있으시면... 한유진은 최대한 다정한 어투로 차근차근 설명을 해나갔다. 귓가에 들리는

  유진군은 참 다정한 사람이군.

이라는 성현제의 말에

  메모 준비나 하시죠

 라고 마음속으로 받아치며 말이다. 한유진의 다정한 어투와 웃음에 유하나는 우물쭈물하다가 입을 열었다.

 “김은주에요”
 “네?”
 “2년 전에 자살한 그 전교 1등 이름, 김은주라고요”

 제 친구였어요. 유하나는 음료를 한 모금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김은주는 고등학교를 수석 입학한 소위 말하는 천재였으며 협회국립대학을 바라보고 있던 학생이라고 한다. 한 학기 동안 친 모든 시험에서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어 선생들의 사랑을 받던 그녀는 자연스레 학생들의 질투 대상이 되었고 혼자가 된 김은주에게 유일한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유하나였다고 한다.

 “은주와 함께 지내면서 저도 친구가 사라졌고 그때 의지할 건 서로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2학기 기말고사 전날에 은주가 옥상에서.. 유하나는 조금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음료를 홀짝였다. 한유진은 그런 그녀를 유심히 살펴봤다. 아까부터 어딘가 불안해 보이고 긴장한 듯한, 유하나는 미세하게 손을 떨고 있었다.

  무언가 숨기는 게 있나 본데,

 성현제도 눈치챈 듯 보였다. 김은주의 이야기를 마친 유하나는 나머지는 글에 쓴 그대로라며 언제쯤 퇴마를 할 수 있으며 돈은 얼마 정도가 필요하냐고 물어보았다. 한유진은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8:00 PM, 6시간 정도면 괜찮겠네.

 “오늘 자정에 하도록 하죠, 협회국립고등학교 후문에서 만나는 거 괜찮습니까?”
 “꼭 그 시간에 만나야 해요?”
 “그때가 귀신들이 슬슬 기어 나올 때거든요”

 50 정도면 되겠네요, 여기로 입금해 주세요. 한유진은 계좌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미소지었다. 유하나는 생각보다 싼 가격이라며 핸드폰을 꺼내 바로 입금을 하고는 한유진에게 입금 화면을 보여주었다. 됐죠? 화면을 보여주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유하나는 가방을 챙기고 일어나 먼저 가보겠다며 카페를 나갔다.

 “뭔가 싸한데..”

 한유진은 카페를 나가는 유하나의 뒷모습을 보며 웅얼거리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자리에서 일어나 컵을 치우고 카페를 나가 집으로 향했다.

  의뢰인, 뭔가를 숨기고 있어요.
  나도 그렇게 느낀다네.


 한유진은 의뢰인의 행동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김은주의 자살에 대해서 언급할 때 유하나는 어딘가 불안하고 긴장한 것처럼 손을 떨었다. 그리고 그때 보인 그 표정은 뭐였지? 한유진의 머릿속은 서서히 복잡해져 갔다.

  일단 집에 와서 생각하게나.
 
 그때 성현제의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제야 한유진은 잠시 생각을 멈추었다.

  그래야겠네요. 집에서 봐요

 그러지, 그 말을 끝으로 찌릿한 느낌과 함께 더 이상 성현제의 음성은 들리지 않았다.


                                                                                                                          * * *


 12:05 AM, 시간을 확인한 후 한유진은 핸드폰을 도로 가죽 재킷의 주머니에 넣었다. 협회국립고등학교 후문, 한유진은 성현제와 함께 유하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안 와, 한유진은 5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유하나에 인상을 찌푸리며 투덜댔다. 사람이 시간 약속을 못 지키면 쓰나.

 “그렇게 성내지 말게, 학생이지 않나?”
 “웃겨, 나도 학생이거든요?”
 “이런, 그랬지. 한유진군은 답지 않게 어른스러워서 잊고 있었군”
 “진짜 짜증나, 당신..”
 “흐음- 저기 온다네”

 성현제는 한유진의 씩씩거림을 가볍게 웃어넘기고는 저 멀리서 걸어오는 유하나를 보았다. 유하나는 그 이후에도 공부를 하러 간 듯 아까와 같은 차임에 가방을 메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러다 한유진 옆에 있는 성현제를 보고 잠시 멈칫하며 경계하는 듯 보였다.

 “저와 같이 퇴마를 할 분이니 경계하지 마세요”
 “성현제라고 하네, 자네가 유하나양 맞나? 잘 부탁하지”
 “아, 네..”

 성현제의 인사에 유하나는 조금 떨떠름하게 답을 하고는 시선을 피했다. 유하나양은 내가 마음에 안 드나 보군, 유하나의 반응에 성현제는 한유진에게만 들리게 웅얼거리며 웃었다. 한유진은 그의 말에 그러려니 하며 주머니에서 작은 핀을 꺼내 후문의 자물쇠를 따 문을 열었다.

 “퇴마사는 문도 딸 줄 알아요?”
 “언제 어떤 상황에 처할지 모르니까요”

 한유진의 행동에 유하나는 조금 당황한 듯하면서도 얌전히 한유진을 따라갔다. 학교 뒤편의 작은 정원, 아무도 없는 불 꺼진 학교는 어딘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성현제는 그럼 난 결계를 치고 오겠네 라며 운동장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제부터 유하나씨가 해주셔야 할 일이 있습니다. 중요한 거에요”

 한유진은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유리문을 따며 말했다. 철컥- 유리문의 잠금이 풀리고, 문을 연 한유진은 유하나에게 야광이라기에는 조금 더 밝은 청록색의 팔찌를 주었다. 이제 유하나씨는 이 팔찌를 하고 교실로 가셔서 자리에 앉아 계시면 됩니다. 이게 유하나씨를 지켜줄 거에요. 한유진은 그렇게 말하며 휴대폰 손전등을 켜고는 유하나를 그녀의 반으로 데려다주었다.

 “그럼 저는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겠습니다.”

 반 뒷문을 열고 그녀가 앉는 것을 확인한 한유진은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앞문의 잠금도 풀고 반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반 입구를 주시하였다. 준비는 다 된 건가? 그때 뒤에서 성현제의 목소리가 들려와 한유진은 순간 뒤로 넘어갈 뻔했지만 다행히 뒤에 있는 성현제 덕분에 넘어지지 않았다. 대신 성현제의 품에 안긴 꼴이 되었지만. 한유진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성현제의 품에서 떨어져 마치 성난 고양이의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왜 그렇게 보나? 나는 내 할 일을 다 해서 합류한 거라네”
 “기척이라도 좀 내고 오지!”
 “사실 유진군을 좀 놀려보고 싶었다네, 반응이 귀여울 거 같아서 말이야”

 예상했던 대로 역시 귀엽군. 성현제는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한유진의 어깨를 돌려 앞을 보게 했다. 자, 이제 집중해야지 유진아. 성현제, 진짜 짜증나. 한유진은 성현제의 행동에 궁시렁거리며 다시 반 입구를 주시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슥- 슥- 복도 끝에서 실내화를 질질 끄는 소리가 들려왔다. 참으로 불온한 기운이야, 한이 많이 맺힌 악귀군. 성현제 말마따나 불쾌할 정도로 한이 가득한 기운이 복도 끝에서 느껴졌다.

  [..ㅎ...나]

 뭐, 뭔 나? 한유진은 쇳소리가 가득한 악귀의 말을 듣고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뭘 말하는 거지? 한유진은 악귀의 말이 본능적으로 원한의 대상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자신이 만나본 악귀들은 대부분 다 그러했으니까. 그때였다.

 “꺄아아악-!!”

 반에서 유하나의 비명소리와 함께 책걸상이 쓰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정신이 든 한유진은 성현제와 함께 곧장 반으로 들어갔다. 반 안에선 썩은 내가 진동했다. 한유진은 순간적으로 몰려오는 토기에 입을 막았고 고개를 숙였다. 냄새 진짜 구리네, 한유진은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막고 있던 손을 내리고 고개를 들었다.

 기괴하게 꺾인 관절과 함몰된 뒤통수, 피에 떡이 진 검은 생머리, 고개를 들자 보이는 악귀의 모습은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알려주는 듯했다.

  [ㅇ..ㅠ ..하..나!]

 악귀는 화가 많이 난 어조로 유하나의 이름을 부르는 듯 보였다. 아무래도 유하나에게 원한이 있나 보군, 성현제는 입가에 호선을 그리며 미약한 전류가 흐르는 푸른 결계 안에서 악귀를 보며 덜덜 떠는 유하나를 보았다. 한유진은 악귀의 한이 생각보다 강해 보이는 탓에 골머리를 썩이며 고민을 했다. 대화가 통하긴 할까... 한유진은 일단 해보자며 악귀를 향해 말을 걸었다.

 “김은주씨?”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악귀, 김은주는 관절이 꺾이는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도 얼굴을 못 봐줄 만큼 기괴하진 않았다. 다만 눈을 부릅 뜬 채 기괴하게 비틀려 있는 웃음이 눈에 띄었다. 어디서 본 글이 떠오르는군, 그때 성현제가 입을 열며 유하나에게 한 걸음씩 다가갔다.

 “귀신의 마지막이 타살이었는지 자연사였는지 표정으로 구분이 가능하다더군, 그럼 우선 한유진군에게 질문하지”
 “네?”
 “타살로 죽은 귀신은 어떤 표정으로 눈앞에 나타날 거라고 생각하나?”
 “음.. 우는 표정?”
 “아닐세, 지금 한유진군이 보고 있는 김은주양의 표정과 비슷하다더군”
 “뭐.. 그럼..”
 “그럼 이제 유하나양에게 질문”

‌ “왜 그런 기괴한 웃음을 짓는지 아나?”
 “뭐.. 뭔...”

 성현제는 무릎을 굽혀 겁에 질린 유하나의 눈과 시선을 맞추었다. 원한을 푸는 상상만 해대서, 김은주양은 원한의 대상인 유하나양에게 원한을 푸는 상상만 해대니 저런 기괴한 표정을 짓게 된 게지. 성현제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유하나의 표정은 점점 더 사색이 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 일격을 날리듯 성현제는 유하나의 턱을 잡고 말했다.

 “숨기는 게 있는 건 알고 있었네, 이제 그만 진실을 알려주실까”

 성현제의 말이 끝나자 유하나는 눈물을 쏟으며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그래, 내가, 내가 밀었어! 내가 김은주 죽였다고! 그녀의 말을 들은 성현제는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그녀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왜? 유하나양, 왜 김은주양을 옥상에서 밀었지? 내뱉는 말과는 달리 다정한 어투에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한유진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질투나서 그랬어요! 고작 1점 차이로 전교 2등으로 밀려나는 게 어떤 기분인 줄 알아요? 아냐고요! 김은주, 저년은 천재라서 손 하나 까닥하면 전교 1등인데, 나는 시발 대가리가 멍청해서 존나 피 터지게 노력해도 저년 발끝에도 못 따라간다고!”

 이유를 캐묻는 성현제에 유하나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소리를 질렀다. 가해자가 뭔 피해자 코스프레야, 한유진은 엉엉 우는 유하나를 차갑게 식은 눈으로 쳐다보다 느껴지는 강한 한에 다급하게 성현제를 불렀다.

 “성현제씨!”
 “이건 좀 위험하군”

 성현제는 유하나를 제 뒤에 숨기고는 순식간에 달려든 김은주의 얼굴을 잡아 창밖으로 던졌다. 와장창- 소리를 내며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함께 김은주는 그대로 운동장으로 추락했다. 유하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상황에 잠시 어안이 벙벙해진 듯 멍하니 김은주가 떨어진 창밖만 보았다. 성현제는 그런 유하나를 내버려 두고 한유진의 손을 잡고 그대로 창밖으로 떨어졌다.

 “정말, 꼭 이렇게 해야겠어요?”

 대체 왜 창밖으로 던진 거야. 한유진은 투덜대며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정돈하고는 김은주를 보았다. 꺾인 관절을 삐걱거리며 일어난 김은주의 몸에서는 검은 한기가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성현제는 한이 더 강해졌군, 쓸데없이 자극해서 말이야. 라며 조금 언짢은 듯한 기색을 비쳤다. 한유진은 자극한 게 누군데.. 라며 성현제를 째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빨리하고 집에 가죠, 유현이가 기다려요”
 “그러지, 도련님이라면 분명 안자고 기다릴 테니까”

 성현제의 말에 한유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문을 외었다. 한에 얽매여 이승을 떠나지 못한 불쌍한 령(靈)이여, 그가 한 자 한 자 말을 내뱉자 스산한 바람이 그의 주변을 감쌌다. 내 지금 그대의 한을 풀고 극락정토(極樂淨土)로 보내드리오리다. 어느새 운동장엔 안개가 가득 찼다. 한유진의 주변에 반딧불을 연상시키는 다섯 개의 푸른빛이 둥둥 떠다녔고 그의 손에는 청록과 붉은색의 리본이 달린 무령(巫鈴)이 들려있었다. 찰랑, 청아한 방울 소리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김은주”

 한유진이 가벼운 몸짓으로 한 걸음씩 내딛으며 김은주의 이름을 부르자 전류가 흐르는 청록의 포승줄이 그녀의 몸을 옭아맸다. 싫..어! 김은주가 명확한 발음으로 소리치며 몸부림쳤다. 한유진은 그녀의 몸부림에도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그 모습은 춤을 추는 것도 같았다. 성현제는 매번 그렇게 느꼈다. 한유진을 감싼 푸른빛들이 그를 더욱더 몽환적인 분위기로 보이게끔 하여 마치 반딧불 속에서 춤을 추는 듯한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찰랑, 두 번째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은주”

 한유진의 주변에 떠다니던 푸른빛들이 김은주를 중심으로 그녀를 둘러싸더니 이내 사람의 형태가 되어 그 모습은 마치 한 명의 수령과 네 명의 포졸 같았다. 네 명의 포졸은 들고 있던 삼지창을 포승줄에 묶인 김은주에게 겨눴다. 한유진은 그 모습을 보고는 마무리를 하려는 듯 손을 들어 방울을 흔들었다. 찰랑, 마지막 방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김은주”

 마지막 이름이 호명되었다. 삼지창을 겨누고 있던 한 명의 포졸이 김은주의 포승줄을 잡아 그녀를 일으켰다. 김은주는 연신 싫다는 말과 유하나에 대한 원망의 말을 내뱉으며 몸부림을 쳤지만, 나머지 세 명의 포졸이 그녀에게 다시 삼지창을 겨누자 다시 잠잠해졌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해 이승을 떠돌던 불쌍한 망자이니 고이 모시거라”

 한유진은 보랏빛 등을 들고 있던 수령을 보며 말했다. 수령은 한유진을 보고 묵례를 하듯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앞장서 안개 속으로 앞장서 걸어갔다. 찰랑, 찰랑, 찰랑, 저 앞이 보이지 않는 안개 너머로 그들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유진은 묵묵히 방울만 울렸다.

 “극락왕생(極樂往生)하소서”

 그 말을 끝으로 방울 소리가 멈추자 안개가 스르르 걷히며 아까의 운동장이 보였다. 그리고 한유진의 손에 있던 방울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한유진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하늘이었다. 한유진은 눈을 감으며 아까 보았던 김은주의 모습을 떠올렸다. 억울한 듯 피눈물을 흘리며 저를 쳐다보던 그녀의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죽고..싶지..않았..어..나는...]

 살고 싶었는데... 한유진은 고개를 휙휙 젓고는 성현제를 보았다. 유하나씨에게 돌아가죠. 그러지. 성현제는 빙긋 웃으며 앞장서 유하나가 있던 교실로 돌아갔다.


                                                                                                                          * * *



  2년 전, ‘ㅎ’ 고등학교에서 벌어진 자살 사건이 사실 자살로 위장한 살인사건이었다는 것이 밝혀져 세간에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의 친구인 유모양으로-...


 팟, 한유진은 그대로 티비를 끄고는 소파에 널브러졌다. 진짜 자수했네. 한유진은 핸드폰 잠금을 풀고 카톡에 들어가 맨 위에 떠있는 알 수 없음이라 쓰인 채팅방을 보았다. 잠시 동안 화면을 보던 한유진은 화면을 터치하여 채팅방에 들어갔다.

  [저, 자수 할 거에요. 이번 일로 제가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런다고 은주가 돌아오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은주에게 용서를 빌고 싶어요. 은주, 좋은 곳으로 간 거 맞겠죠?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채팅창에는 알 수 없음에게서 온 짧은 단문이 있었다. 유하나였다. 자수를 결심한 유하나가 자신에게 카톡을 보내는 것을 마지막으로 카톡을 탈퇴한 것이다. 한유진은 천천히 단문을 읽다가 이내 채팅창을 삭제하고 화면을 껐다. 당신 말이 맞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뉘우쳐도 김은주는 돌아오지 않아요. 한유진은 핸드폰을 소파에 내려놓고 일어나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성현제씨! 오늘 아침은 뭐에요?”
 “된장국, 고등어구이, 그리고 도련님이 좋아하는 반숙 계란이라네”
 “맛있겠네요. 유현아! 밥 먹자!”

 한유진은 식탁에 상을 차리는 성현제를 슥 보고는 아직 자고 있을 한유현을 깨우러 2층으로 올라갔다. 도련님은 잠꾸러기군, 한유현을 깨우러 간 한유진의 뒷모습을 보던 성현제는 풋 웃으며 마저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아하하- 성현제의 귓가에 즐거운 듯이 웃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응? 성현제는 뭔가 싶어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앞이 탁 트여 마당이 보이는 유리창, 마당에서 잔잔한 바람에 흩날리는 보라색 등나무들과 함께 뭐가 그리 신나는지 해맑은 웃음을 지으며 등나무를 잡으려 뛰어다니는 5살 즈음의 여자아이가 있었다.

 “불쌍하군, 어린 나이에”


                                                                                                                          * * *



  환영(歡迎), 오는 사람을 반갑게 맞이한다는 뜻. 그것이 산 자 뿐만 아니라 죽은 자도 포함된다는 걸
  웬만한 사람들은 알 리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