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혈 주의



  여름이었다. 그것도 화창한 여름. 한유진은 여름에 약했다. 유독 약하다 같은 건 아니었지만, 전과 달리 요즘 여름은 더운 탓에 에어컨이 필수품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한유진은 해에 약한 흡혈귀다. 그리고 흡혈귀는 여름에 약했다. 날이 더워서? 그것도 맞기야 하지만, 여름은 해가 길었다. 해가 짧은 겨울과는 달리, 여름은 해가 빨리 뜨고 늦게 지는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그건 한유진에게는 매우 안 좋았다. 사냥하기도 어렵게 되어버리니까. 한유진이 축 늘어져 있자, 한유현이 옆에 다가와서는 한유진의 머리를 쓸어주더니 이마 위로 손을 올렸다.
   “형, 밥은?”
   “밥 생각도 안 드네.”

  한유현은 한유진이 흡혈귀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가족인데 모를 수 있을 리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간단하다. 한유진은 인간의 음식을 먹는 데 한계가 있었다. 주기적으로 피를 섭취해야 하는 상황이었음에도 한유진은 꾹 참으며 인간의 음식을 입에 댔을 뿐이다. 부모도 제대로 된 관심을 주지 않는데, 적어도 한유진은 자신이라도 그 어린아이를 보듬어야 한다는 마음에 한유현의 곁에 붙어있다가, 간혹 한유진이 자리를 비우곤 했다. 그게 피를 섭취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은 아직도 모를 테지만.
   “그래도 먹어야 하는데.”
   “내 동생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불러서.”

  한유진이 눈을 휘게 웃자, 한유현이 작게 웃음을 흘리며 한유진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한유진의 볼이 말랑해서인지 한유현은 한유진의 볼을 만지작거렸고 한유진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서 한유현을 바라보았다.

   “밥 먹자, 형.”
   “진짜 배 안 고픈데…….”
   “형이 안 먹는 건 내가 싫어서 그래. 응?”

  한유진은 한유현이 부탁하는 것에 약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한유현이 손을 내밀었다. 몸을 일으켜주려는 것이 분명했다. 한유진은 한유현의 손을 잡았고, 한유현은 손을 잡아당기며 한유진을 품에 안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유진은 제 동생이 이렇게 컸다며 뿌듯한 마음으로 한유현의 등을 토닥였다.


                                                                                                                          * * *



  그랬을 터였는데. 한유진은 마른세수를 하며 눈앞의 한유현을 바라보았다.
  분명 식탁에 가서 밥을 먹을 때까지는 아주 평화로웠다. 한유현도 웃으며 대화했고, 한유진도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밥을 먹은 건 적었지만. 오물거리며 씹어 삼키다가 울리는 전화에 몸을 일으켰다. 한유진은 핸드폰을 보더니 어색하게 웃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전화를 받고는 급하게 자리를 피했다. 전화가 걸린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알림이었을 뿐이다. 요즘엔 이런 어플도 많으니까. 자리를 피한 채로 좀 기다리다가 다시 식탁 쪽으로 돌아가서는 자리에 앉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한유현을 바라보자, 한유현이 눈을 느릿하게 끔벅이며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형?”
   “미안해, 유현아. 일이 생겨서 잠시 나갔다 와야 할 것 같아.”
   “갑자기? 밥은 다 먹고 가지.”
   “어어, 밥…….”
  한유진은 식탁을 바라보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생 혼자 밥 먹으면 쓸쓸할 텐데. 손가락을 꼬물거리다가 젓가락을 잡더니 한유진은 반찬을 젓가락으로 집어 한유현의 밥그릇에 담긴 밥 위에 올려두었다.
   “많이 먹어야지. 아직 크는 중인데.”
   “나보다는 형이 더 먹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이제 다 컸고, 너 더 챙겨야지.”
  너는 성장기잖아. 한유진이 국을 한 숟갈 떠먹더니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밥도 한 숟갈 떠먹었다. 맛있다. 오물거리는 입을 보던 한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형 잘 먹어서 다행이네.”
   “누가 만든 건데. 당연히 잘 먹어야지.”
  한유현은 조금 쑥스러운 눈치였다. 한유진은 마냥 웃으며 밥그릇을 비웠고, 한유현도 금세 밥그릇을 비웠다. 한유진은 한유현이 밥그릇을 비운 것뿐인데도 뿌듯해하며 식탁 위를 정리하고서 한유현이 설거지하겠다는 것을 말려가며 주방에서 내쫓았다. 설거지까지 전부 마치고서 손의 물기를 수건으로 닦아냈다. 밖을 바라보니 해가 반쯤 떨어진 것이 보이자 급하게 겉옷을 챙겼다.
   “형, 가?”
   “응, 유현아. 다녀올게.”
  한유현은 어딜 가는지 묻고 싶은 눈치였지만, 그것을 답해줄 수는 없었기에 한유진은 서둘러 집 밖으로 발을 옮겼다. 탈것을 타기보다는 길거리로 나가더니 눈을 움직이며 주변을 살펴보았다. 정확히는 주변에 걸어가는 사람을 살펴보는 것이지만. 인간의 음식을 입에 댔으니 피를 마셔야 했다. 안 그러면 속이 망가져 버리니까. 평소 같으면 준비해둔 피가 있었겠지만, 오늘은 없었다. 그래서 안 먹으려고 했던 거였는데. 한유진은 입술을 달싹이며 눈동자만 움직이다가 딱 적당한 남성이 보였다. 안색도 좋아 보이고, 건강해 보이는 인간.
  꾀어내기는 쉬웠다. 흡혈귀인데 그런 것이 어려울 리가. 애초에 못 하면 먹이를 찾지도 못한다. 한유진은 작게 심호흡하며 능력을 썼다. 그 남성의 옆으로 지나가며 능력을 쓰자, 남성이 자연스럽게 뒤를 따라왔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최면이었다. 환각 같은 건 아니고, 페로몬 같은 것을 뿜어내는 것뿐이지만. 한유진의 뒤를 따라온 남성의 숨소리는 조금 거칠었다. 능력이 너무 강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인적이 드문 거리로 가서 한유진이 손짓하자, 남성이 멈춰서서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어쩌다보니 집과 가까워지긴 했지만, 괜찮을 것이다. 한유현이 이런 곳에 올 리도 없고.
   “죄송해요.”
  딱 조금만 먹을게요. 죽지 않을 정도로만. 한유진이 중얼거리듯 작게 속삭였다. 입을 벌리더니 남성의 목덜미에 인간에 비해 날카로운 송곳니를 박고서 천천히 빨아들이자, 입안에 퍼지는 혈향에 절로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입안에 피를 머금더니 삼켰다. 입을 떼어내자, 남성의 목덜미에는 잇자국이 남아있었다. 덤으로 피가 조금씩 흘러나오기도 했고. 한유진은 그것을 보더니 입술을 달싹이다 식욕이 일었는지 작게 심호흡했다. 안 돼. 안 되는데…….
   “……형?”
  한유진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몸이 굳어서 움직일 수 없었다. 유현이? 왜 제 동생이 뒤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왜, 왜? 한유진은 몸이 조금씩 떨렸다. 이런 모습을 보여서 경멸하면 어떡하지. 동생에게 미움을 받고 싶지는 않았다. 손을 꼬물거리던 한유진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다가오는 것인지 발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한유진은 도망칠 수 없었다.
   “오, 오지 마!”
   “……형, 거기서 뭐 해?”
   “어, 그러니까…….”
   “앞에 사람은 누구고.”
  한유진은 물음에 답할 수 없었다. 미움받기 싫은데. 한유진의 뒤에 누군가가 있는 것인지, 그림자가 졌다. 손이 한유진의 손을 잡았다.
   “형, 그 사람은 누구냐니까.”
   “……유현아.”
   “그 사람을 먹었어?”
  한유진의 입이 다물어졌다. 손가락을 꼬물거리다가 고개를 푹 숙이더니 결국 끄덕이며 시선을 이리저리 굴렸다. 어떡하지.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라 고개는 끄덕였지만, 한유진은 도망치고 싶었다. 남성의 몸을 돌리고 손짓하자, 남성은 인적이 많은 거리로 걸어갔다. 사람들 사이에 섞이면 제정신을 차릴 것이었다. 문제는 저 사람이 아니지만.
   “왜 저 사람을 먹었어?”
  한유현이 한유진의 몸을 돌려 시선을 마주하다가 주먹을 꼭 쥐었다. 경멸하는 걸까, 때리는 걸까. 한유진이 눈을 질끔 감았다.
   “나는 싫었어?”
   “……응?”
   “근처에 나도 있었잖아.”
  아니, 애초에 바로 앞에 있었잖아. 한유현이 불만이라는 듯이 화를 내는 것 같았다. 한유진이 눈을 가늘게 뜨고 한유현을 바라보자, 한유현은 짜증이 난 표정이었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로 한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유진은 그것마저 잘났다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손을 뻗어 손가락 끝으로 한유현의 미간을 매만졌다.
   “넌 내 동생이잖아.”
   “그래도. 난 형이 다른 사람 먹는 거 싫어.”
  한유진이 눈을 느릿하게 끔벅였다. 잠깐.
   “알고 있었어?”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대체 언제부터 알고 있었던 거지. 한유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지만, 한유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피를 먹어야 할 때는 전부 숨어서 먹었는데. 게다가 혹여나 피가 들어있던 팩을 발견하고 물어볼까 싶어 따로 버렸단 말이다.
   “전에 한 번, 형이 먹는 거 본 적 있어.”
  한유현은 팩을 기억하고 있다. 한유진이 어디서 꺼내오는지도 알아내고, 그것을 확인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혐오감? 그런 게 생길 리가 없었다. 흡혈귀임에도 인간을 기른다는 자체가 엄청났기에. 한유진은 인간의 피보다는 짐승의 피를 마셨다. 인간이 더 맛있을 수 있는데도. 금전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자주 마시기 힘들었던 것 같지만, 간혹 마시긴 했다. 인간의 피로 만들어진 혈액 팩이 들어온다거나, 오늘 같은 날에만.
   “……싫지 않아?”
   “형이잖아.”
   “징그럽잖아.”
   “전혀. 그리고 나도 먹어줬으면 좋겠고.”
  한유현의 말에 한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도리도리 저었지만, 한유현은 그것을 무시하며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윗단추부터 두어 개를 풀고는 한유진을 바라보자, 한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냐, 안 돼. 유현아, 안 돼.”
   “형.”
  한유현이 목덜미를 보이자 한유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되는데. 방금 먹었음에도 다시 식욕이 일자, 한유진은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려고 했다. 하지만, 한유현이 손을 잡는 탓에 물러나지도 못하고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난 형이 힘든 게 싫어.”
   “유현아, 나는…….”
   “아니면, 나는 맛이 없을 것 같아?”
   “아니야!”
  한유진이 소리치다가 흠칫하며 한유현을 바라보았다. 평소에도 그런 눈으로 간혹 본 적이 있다는 것을 들킬 것 같아서. 하지만 한유현은 오히려 좋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해서는 한유진을 품에 끌어안았다. 한유진은 아무것도 모르고 시선을 이리저리 굴려대다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한유현의 등에 손을 얹고 천천히 토닥였다.


                                                                                                                          * * *


  그래서 지금 상황이 된 것인데. 한유현은 물러설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럼, 형.”
  먹어. 거부하지 말고. 한유현의 말에 한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싫다며 거부해도 한유현은 듣지 않았다. 남의 피를 먹는 게 싫은 모양이지만, 애초에 동생을 어떻게 먹어!
   “안 먹으면 직접 먹일 거야.”
   “아니, 유현아.”
   “형, 먹어야지.”
  미치겠네! 한유진은 돌아버릴 노릇이었다. 내가 뭘 잘못했더라. 한유현이 이렇게 할 정도의 일이 아닌데. 분명 별거 아닌 일인데도 불구하고, 한유현은 목덜미를 가리켰다. 직접 먹인다는 것은 피를 낸다는 것 같은데. 한유진이 작게 한숨을 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끄덕였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먹는 척만 하지 말고.”
   “알았어, 먹을게. 진짜 먹을게.”
  한유현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웃었다. 눈을 휘게 웃자, 한유진도 입을 벌리고는 한유현의 목덜미에 날카로운 이를 박아넣었다.